자, 성 미카엘과 성 구둘라 대성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앤디예요. 눈앞의 쌍둥이 탑을 보며 거의 천 년 전 브뤼셀을 상상해 보세요. 상인과 여행자가 트뢰렌베르흐 언덕으로 몰려오던, 도시의 심장 같은 교차로였죠. 성당은 옅은 고베르탕주 석재로 지어져 단정한 금빛 느낌이 납니다. 여기엔 아홉 세기 무렵 성 미카엘 예배당이 먼저 있었고, 전설로는 근처 감옥 때문에 ‘몽 데 플뢰르’, ‘슬픔의 언덕’이라 불렸대요. 부동산 점수는 낮지만 중세 주교들에겐 인기였겠죠.
열한 세기에 랑베르 이세 백작과 베르됭의 오다가 로마네스크 양식 교회를 세우고, 사랑받던 성인 구둘라의 유해를 모셔옵니다. 유해는 성인의 흔적이라 여긴 귀한 유물이라 행렬이 대단했겠죠. 교회는 천칠십이년에 다시 봉헌됐고요. 이후 앙리 일세가 둥근 두 탑을, 아들 앙리 이세가 천이백이십육년에 고딕 신랑을 시작합니다. 신랑은 입구에서 제단까지의 긴 본당이에요. 무려 삼백 년에 걸쳐 돌을 다듬고 옮기고 투덜대며 완성했답니다.
위쪽 탑은 브뤼셀 시청 탑도 설계한 얀 반 루이스브루크 작품. 더 높이 올리려다 지쳤는지 첨탑을 잊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대신 버팀벽, 그러니까 벽을 밖에서 받쳐 주는 돌 지지대와, 뾰족 장식 첨탑, 그리고 빗물받이 괴수 조각 가고일이 눈을 부릅뜨고 지키죠. 계단은 천칠백 년대 초 시민들의 선물이고, 정원엔 보두앵 국왕 흉상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기둥 위 양배추 잎 같은 주두, 그러니까 기둥 머리 장식이 보여요. 사도 조각, 바로크 설교단, 고해소가 줄지어 있고, 얀 하에크와 베르나르 반 오를리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왕실 색과 성경 이야기를 빛으로 들려줍니다. 파이프 오르간은 두 대, 큰 건 파이프가 사천 개가 넘어 연주 때 신랑이 떨릴 정도예요. 종도 남탑에 마흔아홉 개, 북탑엔 ‘살바토르’라는 거대한 부르동 종이 있는데, 부르동은 가장 낮고 큰 기본 종을 말합니다. 왕실 결혼식, 국장, 벨기에 국경일엔 ‘테 데움’ 찬가와 함께 울려 퍼지고, 종 몇 개는 왕족 이름까지 달았죠. 여긴 왕과 성인만의 공간이 아니에요. 종교개혁과 혁명 약탈, 철도 시대도 버텼고, 요즘은 송골매 가족도 산답니다. 깃털이든 대주교 모자든, 들어올 사람은 다 들어오는 곳이죠. 더 궁금한 점은 채팅에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