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면 뾰족한 아치들과 송곳 같은 장식 기둥들 위로 바로크식 종탑이 쑥 올라온 돌 건물이 보이죠. 여기가 샤펠 광장 끝자락의 ‘샤펠의 성모 성당’입니다.
자, 시계를 거의 구백 년쯤 거꾸로 돌려볼까요? 옛 브뤼셀 성벽 바깥 변두리에 작은 예배당이 있었는데, 천백삼십사년에 루뱅의 고드프루아 일세 백작이 기증했대요. 곧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맡았고, 동네가 커지면서 “두 번째 본당 성당이 필요하겠는데?” 하며 지금의 큰 성당으로 자라납니다.
건물은 로마네스크와 고딕의 ‘과도기’ 걸작이에요. 로마네스크는 두껍고 묵직한 느낌, 고딕은 하늘로 쭉 끌어올리는 느낌이죠. 거기에 바로크가 한 숟갈 얹혀서, 세기별 인테리어를 한 번에 본 기분입니다. 돌은 고베르탕주에서 왔는데 거리만 사십오 킬로미터, 마차로 실어 나르며 “아직 멀었냐” 소리 꽤 나왔겠죠.
사건도 많았습니다. 천사백오년에 불로 신랑, 그러니까 긴 본당이 크게 탔고, 더 크고 대담하게 브라반트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었어요. 브라반트 고딕은 이 지역식 고딕으로, 날렵한 선과 뾰족한 예배당들이 특징입니다. 천오백칠십사년엔 칼뱅파가 들이닥쳐 부숴 놓고, 가톨릭이 돌아와선 벼룩시장에서 산 중고 소파처럼 수리할 데가 한가득이었죠.
위에 보이는 종탑도 원래는 달랐어요. 천육백구십오년에 프랑스 대포가 옛 첨탑을 날려버리자, 앙투안 파스토라나가 지금의 우아한 슬레이트 지붕 꼭대기를 만들었습니다. 가까이서 회색 ‘버트리스’, 즉 벽을 떠받치는 지지대를 보고, 가고일도 찾아보세요. 가고일은 빗물을 빼는 괴물 조각인데 비둘기 단속도 같이 하는 얼굴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로마네스크 트랜셉트, 즉 십자가처럼 가로로 난 공간에서 시작해, 창이 큰 신랑으로 넘어가며 분위기가 확 밝아져요. 그리고 여기엔 성인만 아니라 예술가도 잠들어 있습니다. 농민 축제 그림으로 유명한 피테르 브뤼헐 더 엘더가 천오백육십구년에 이곳에 묻혔고, 그의 기념비가 남아 있죠. 또 한쪽 소예배당엔 브뤼셀 폴란드 공동체가 소중히 여기는 성화도 있어, 오래된 벽돌과 오늘의 전통이 연결됩니다. 불, 전쟁, 복구를 다 겪고도 이 자리에서 여전히 버티는, 꽤 끈질긴 성당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