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앞에 펼쳐진 플라스 루아얄은 돌로 단정하게 포장된 직사각형 광장이에요. 한가운데는 말을 탄 기사 동상, 뒤로는 하얀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이 받쳐 주죠.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처럼 ‘질서, 대칭, 기둥’으로 멋을 낸 스타일이라 보면 됩니다. 자, 브뤼셀의 “왕실 단골 아지트”에 오신 걸 환영해요. 저는 앤디, 오늘은 왕실과 혁명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광장을 안내해 드릴게요.
원래 이 자리는 중세부터 쿠덴베르크 궁전이 있던 권력의 중심이었습니다. 백작, 공작, 왕, 심지어 황제까지 살았죠. 그런데 천칠백삼십일년 이월의 어느 밤, 궁전이 큰불로 잿더미가 됩니다. 그래서 별명도 쿠르 브륄레, 즉 “불탄 궁정”. 사십 년 넘게 폐허로 남아 있다가, 천칠백칠십오년부터 천칠백팔십이년 사이 오스트리아 총독 로렌의 샤를 알렉상드르가 “프랑스 왕실 광장만 멋있을 순 없지” 하며 새 광장을 밀어붙였고, 건축가 바레와 기마르가 지금의 대칭미를 완성했어요.
중앙 동상도 드라마가 많았습니다. 처음엔 샤를 알렉상드르가 로마 장군 복장으로 서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파가 쓰러뜨리고, 다시 세우면 또 쓰러지고, 결국 동상은 동전으로 녹아 사라졌죠. 대신 “자유의 나무”가 왔다가 그것도 오래 못 갔고요. 그러다 천팔백사십팔년에 등장한 인물이 지금의 주인공, 십자군 기사 고드프루아 드 부용입니다. 브뤼셀 최초의 기마상이라 더 의미가 있어요. 받침대의 청동 부조는, 얇게 도드라지게 새긴 조각인데요, 한쪽은 예루살렘 공성전, 다른 쪽은 새 왕국의 법을 보여 줍니다. 전쟁도 하고 법도 만들고, 정말 바쁜 분이죠.
주변의 여덟 개 건물 파빌리온에는 한때 복권 사무소, 양조장, 백작부인, 수도원 같은 “동네 유명인”들이 들락거렸습니다. 지금은 벨뷰 박물관, 왕립미술관들, 악기 박물관이 코앞이고, 어떤 지하 공간은 중세 길 위에 지어져 고고학 유적으로 이어져요. 그리고 정면의 쿠덴베르크 생자크 성당은 후에 돔 종탑이 더해졌고, 벨기에 초대 국왕 레오폴드 일세가 이곳에서 첫 선서를 했습니다. 혁명기엔 잠깐 “이성의 신전”으로 직업 전환도 했고요. 브뤼셀에선 성당도 이직을 합니다.
지금의 플라스 루아얄은 차와 트램이 지나가는 교차로이지만, 왕실 행렬도, 바리케이드도, 시위와 축제도 다 겪은 무대예요. 보행자 중심으로 돌려놓으려는 복원도 진행 중이라니, 다음엔 이 광장이 사람들에게 더 친절해질지도 모르죠. 그때까지는… 가운데 기사님이 또 넘어지지 않게, 살짝 응원 한 번 보내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