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덴베르크 궁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예전 이름은 호프 판 브뤼셀, 그러니까 ‘브뤼셀 궁정’쯤 되는 곳이죠. 지금 여러분 발밑은 영광도 있었고 사고도 있었던, 역사 드라마 촬영지 같은 땅입니다. 타임머신은 필요 없고요, 상상력만 챙기세요. 저는 앤디입니다.
때는 십일 세기, 이 언덕은 ‘차가운 언덕’이란 뜻의 쿠덴베르크였어요. 랑베르트 이세 발데릭이 작은 요새를 세워 도시를 내려다봤죠. 튼튼했지만 편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 얀 일세, 얀 이세, 얀 삼세 시절에 요새가 점점 커져 브라반트 공작들이 머무는 제대로 된 거처가 됩니다.
그리고 십사 세기 초, 필리프 더 굿이 등장합니다. 이름부터 “좋은 필리프”라니, “그럭저럭 필리프”였으면 곤란했겠죠. 그는 여기서 네덜란드 전역을 다스리겠다는 꿈을 꾸었고, 브뤼셀 시민들은 발 빠르게 땅을 사서 공작 마음을 얻으며 아울라 마냐를 짓기 시작합니다. 아울라 마냐는 ‘큰 홀’이라는 뜻의 거대한 연회장이에요. 십오 세기 중반엔 이 궁전 덕분에 브뤼셀이 지역 정치의 심장으로 떠올랐죠.
정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동물원에 미로까지 있었대요. 귀족들이 길 잃는 곳이라니, 괴물 대신 귀족이 출몰하는 미로였겠네요. 구석엔 겨자색 여름 павиль리온, 즉 손님 접대용 작은 별궁도 숨어 있었습니다.
전성기는 카를로스 오세 때입니다. 천오백십오 년, 이 방들에서 공식 통치자로 선포됐고, 황금양모 기사단이라는 최정예 귀족 모임이 여기서 회의했죠. 그래서 브뤼셀은 “네덜란드의 군주 수도”로 불렸습니다. 천오백오십오 년엔 카를로스가 아들 필리프 이세에게 아울라 마냐에서 왕위를 넘깁니다. 역사적 바통터치였죠.
알베르트 대공과 이사벨라 시절엔 르네상스 무도회, 값비싼 미술품, 산책 정원이 일상이었습니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이런 화려함은 처음”이라고 감탄했대요.
하지만 반전은 천칠백삼십일 년, 이월의 어느 밤. 불이 났습니다. 공식 기록은 “왕실 부엌에서 잼을 만들다가”라지만, 육백 년 궁전을 마멀레이드로 태운다고요? 소문은 총독이 아끼던 카펠리니 부인의 침실에서 시작됐다고도 하죠. 촛불이든 야식이든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불길이 번지는데 소방대는 우물 물이 얼어 제대로 못 썼고, 보물 몇 점을 건지려는 용감한 시도만 남긴 채 대부분이 무너졌습니다. 왕실은 간신히 탈출했지만, 일부 직원은 목숨을 잃었어요.
그 뒤로 오랫동안 폐허로 남았다가, 결국 지금의 플라스 루아얄, 왕립 광장을 만들기 위해 정리됩니다. 그래도 쿠덴베르크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여러분 발밑 지하에 원래의 지하창고와 통로, 예배당 기초, 아울라 마냐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브뤼셀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로, 발굴 유물이 전시돼 육백 년의 권력과 음모, 그리고 왕실의 소동을 이어 줍니다.
다음에 잼을 드실 때, “적어도 쿠덴베르크식 조리법은 아니네” 하고 안심하셔도 좋겠습니다. 화재, 철거, 재건, 현재의 관람 구역이 더 궁금하면 채팅에 남겨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