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앞에 보이는 건 연한 석재에 세로로 긴 창들이 줄지어 박힌, 딱 각 잡힌 큰 건물이죠. 넓은 계단 옆엔 말 탄 남자 동상이 근엄하게 지키고 있으니, “동상 뒤로 솟은 직사각형 건물” 찾으면 정답입니다.
여긴 벨기에 왕립도서관(케이-비-알), 현지에선 알베르틴 또는 알베르티나라고도 불러요. 안에 뭐가 얼마나 많냐고요? 책과 자료가 육백만 점이 넘고, 서가 길이만 백오십 킬로미터예요. 소설 코너에서 길 잃으면, 브뤼셀에서 파리 방향으로 탈출하는 기분일 겁니다.
이야기는 십오 세기, 부르고뉴 공작들 시대로 올라가요. 그때의 ‘고급 독서’는 조명이 들어간 삽화 필사본, 그러니까 금박과 채색으로 꾸민 손글씨 책을 넘기는 거였죠. 선량공 필리프가 천사백육십칠년에 세상을 떠날 무렵, 이 컬렉션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고 삽화 필사본만 약 구백 권. 세밀화가 시몽 마르미옹, 그리고 ‘부르고뉴의 마리아의 대가’ 같은 이름도 남아 있어요.
그런데 샤를 대담공이 죽은 뒤엔 방치와 약탈을 번갈아 맞습니다. 결국 천오백오십구년, 스페인의 펠리페 이세가 쿠덴베르크 궁전에 ‘저지대 국가들의 왕립도서관’을 세우며 남은 필사본을 엄격히 관리했죠. 하지만 천칠백삼십일년 쿠덴베르크 화재는 악몽이었습니다. 하인들이 창문 밖으로 필사본을 던져 살려 보려 했지만 많은 것이 불길에 사라졌고, 어떤 자료는 전쟁과 프랑스 혁명 통에 브뤼셀과 파리를 오가다가 나폴레옹 패배 후에야 조금씩 돌아왔어요.
현대의 케이-비-알은 벨기에 독립 뒤인 천팔백삼십칠년에 본격 출발합니다. 샤를 반 휠텀 컬렉션을 흡수하며 책만 한 번에 칠만 권이 늘었고, 결국 공간이 모자라 지금 보는 이 건물로 이어졌죠. 알베르트 일세를 기리는 전후 프로젝트로, 천구백육십구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안에는 고대 시칠리아 희귀 동전, 루벤스와 브뤼헐과 관련된 장식 필사본, 벨기에 판화와 드로잉 컬렉션이 기다려요. 음악 부서엔 바흐의 자필 악보부터 재즈 애호가가 좋아할 음반까지 있고, 지도, 포스터, 벽지, 심지어 복권까지 모읍니다. 케이-비-알 박물관에선 부르고뉴 필사본을 전시해 당시의 촛불 문화와 깃펜 작업을 상상하게 해주죠.
드라마도 있었어요. 화재와 도난 사건들, 그리고 이천이십년엔 나치가 약탈해 행방불명이던 작품이 여기서 다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연구자들이 찾는 곳이고, 열여덟 살 이상에 연회비를 내면 자료 열람이 가능해요. 저는 앤디, 다음 이야기로 이어가기 전에 궁금한 게 있으면 채팅에서 판화·드로잉 부서나 음악 부서도 더 풀어 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