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쪽 횡단보도 바로 앞, 둥근 모서리를 가진 회색 석조 건물 보이죠? 위에는 깃발 띠가 둘러 있고 큰 현대식 배너가 걸려 있어요. 여기가 브뤼셀 미술궁, 사람들이 보자르라고 부르는 Centre for Fine Arts, Brussels입니다.
천구백이십 년대, 라벤슈타인 거리에서는 망치 소리가 쿵쾅 울리고, 브뤼셀 최고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가 멋 부린 모자를 쓰고 도면을 들락날락했겠죠. 지금 보이는 과감한 곡선의 아르데코 외관, 그러니까 직선과 곡선을 장식적으로 섞은 근대 양식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에요. 브뤼셀은 수십 년 동안 음악, 미술, 연극을 한 지붕 아래 모을 공간을 꿈꿨고, 증권거래소 자리나 공원에 짓자는 말도 있었대요. 공모전과 예산 난항, 세계대전까지 겹친 끝에 천구백이십 년대 초 드디어 땅과 후원과 집념이 모였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앙리 르뵈프. 은행가인데 예술 감각이 남달라 오르타와 손잡았죠. 목표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창작 종합상가’ 같은 곳. 천구백이십팔 년 개관 때는 국왕과 왕비도 참석했고, 홀은 오케스트라와 전설적 무용수, 관객의 수다로 가득 찼습니다. 다만 경사진 부지, 까다로운 규정, 늘 모자란 돈 때문에 오르타가 “내가 낳은 아이 중 제일 키우기 힘든 애”라고 농담했대요. 그래도 말발굽 모양 객석의 혁신적인 콘서트홀 덕분에 재즈 팬부터 초현실주의 화가, 거장 지휘자와 발레 스타까지 다 모였죠.
전쟁과 점령, 경제 위기, 벨기에 특유의 예산과 언어 논쟁도 버텼고, 이차 세계대전 중에도 문을 닫지 않아 영화도 틀고 예술가들이 몰래 모여 음악의 불씨를 지켰습니다. 전후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열기,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의 드라마틱한 연주가 더해졌고, 엑스포 오십팔 때는 컬러 텔레비전과 현대미술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파티도 열렸죠. 지붕 누수와 콘크리트 균열, 육십팔 년 시위로 소란도 있었는데 조각 홀에서 예술가들이 조용히 농성하며 공간과 민주주의를 요구했으니, 예술판 합숙이라 해도 되겠네요.
최근에는 복원 작업을 거쳤고, 이천이십일 년 지붕 화재 피해 뒤에도 다시 단장했습니다. 지금은 프리다 칼로부터 키스 해링까지 전시, 공연, 영화, 무용이 이어져요. 참고로 우주에는 보자르 이름을 딴 소행성도 있습니다. 브뤼셀의 창의력, 지구 밖까지 진출했네요. 더 궁금한 시설 이야기나 감독들, 잡학 퀴즈는 채팅에서 이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