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돌기둥 두 개가 우뚝 서 있고, 꼭대기엔 흉상, 그러니까 머리와 가슴만 조각한 상이 장식처럼 얹혀 있죠. 옆으론 화려한 철제 문이 열리며 가로수가 늘어선 길이 쭉 이어지고, 정면엔 분수가 우아하게 물줄기를 뿜습니다. 여기가 브뤼셀 공원의 정문이에요. 저는 앤디, 오늘은 여기서 역사 산책 한 판 펼쳐봅시다.
이 공원은 그냥 잔디밭이 아니라 한때 공작, 황제, 혁명가들이 드나들던 땅입니다. 브뤼셀 중심부에서 가장 큰 공공 공원이고, 면적이 서른두 에이커나 돼요. 길 잘못 들면 살짝 미로 느낌인데, 다행히 미노타우로스 대신 다람쥐가 가끔 권력자처럼 굴 뿐이죠.
원래는 쿠덴베르크 궁의 정원이었고, 중세 귀족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와란데’라는 사냥터로, 사슴과 매가 살았고 소문에 따르면 콧대 높은 오리도 있었다나요. 자연 그대로의 사냥 구역과, 코린트식 장식처럼 화려한 미로 정원, 꽃밭, 새를 모아둔 조류 사육장이 있는 사적 정원으로 나뉘었어요. 입장권 없는 초창기 브뤼셀 동물원 같은 셈이죠.
그런데 천칠백삼십일년, 큰 화재로 궁이 잿더미가 됩니다. 공원도 한동안 방치돼 길은 우거지고 조각상은 쓰러진 채였죠. 그러다 “브뤼셀답게 한번 새로 해보자”가 발동합니다. 천칠백칠십육년부터 천칠백팔십삼년까지 질-바르나베 기마르와 요아힘 치너가 고전주의, 즉 그리스 로마처럼 반듯한 대칭을 살린 신식 공원으로 재설계했어요. 오래된 나무 천 그루 넘게 베고, 새 나무는 삼천 그루를 심었습니다.
천칠백구십삼년엔 프랑스 혁명파 ‘상스퀼로트’, 귀족 바지 안 입는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 사람들이 들어와 조각상을 박살 냈어요. 로마 황제 흉상을 볼링핀처럼 굴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시민들이 모금으로 복구했고, 가장 많이 낸 서른 명이 운영 위원회를 꾸렸답니다. “저 나무 가지 칠까 말까”로 회의가 길어졌을 것 같죠.
천팔백년대엔 나무가 이중 가로수로 더 웅장해지고, 주철 울타리와 우아한 출입구가 도시 소음을 막아줍니다. 천팔백삼십년 벨기에 혁명 때는 군인들이 여기 몸을 숨겼고요. 분수에서 물 말고 핫초코가 나왔으면 더 좋았겠죠.
지금 공원 안엔 왕립 공원 극장이 있어요. 시작은 문학 살롱이었고, 소설을 일 페니에 빌려주던 곳이라 일종의 원조 넷플릭스였죠, 구독 요금제는 훨씬 단순했고요. 아이들이 공연을 올리자 동네 주교가 기겁했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어요. 뒤쪽의 보크살은 초록 격자 장식과 제국풍 돔이 있는 사교장으로, 십구 세기 귀족들의 무도회와 파티가 울려 퍼지던 곳입니다. 라 모네 극장도 이 공원의 밴드스탠드에서 연주회를 열었고요.
메인 길을 보면 대칭이 딱 맞게 짜여 있어, 세 개의 큰 대로가 법원, 왕궁, 그리고 플라스 뒤 트롱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됐습니다. 가로수는 플라타너스, 밤나무, 느릅나무, 너도밤나무 등으로 작은 수목원처럼 다양하고, 공원 곳곳에 예순 점쯤 되는 조각상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왔어요. 헤르메스는 여러 번 마주칠 수도 있으니 “또 너냐” 하고 인사해도 됩니다.
건물, 기념물, 조각상, 나무 이야기를 더 파고 싶다면 채팅으로 불러요. 제가 브뤼셀 수다, 제대로 풀어드릴게요.



